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ADHD라면? 그 반대도 있다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두 손을 가볍게 모으고 있는 클로즈업 장면

항우울제를 바꿔가며 2년을 버텼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ADHD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기분만 더 가라앉는 사람도 있습니다. ADHD와 우울증은 겉으로 놀라울 만큼 닮아 있어서, 한쪽으로 진단받은 뒤에야 다른 쪽이 진짜 원인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둘 다 ‘집중이 안 된다’고 말한다

진료실에서 가장 흔한 호소 중 하나는 “집중이 안 돼요”입니다. 문제는 이 말이 ADHD 환자에게서도, 우울증 환자에게서도 똑같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집중력 저하, 동기 부족, 수면 문제, 감정 기복까지 — 두 질환이 공유하는 증상 목록은 생각보다 깁니다.

두 질환의 증상이 이렇게 겹치는 데는 신경생물학적 이유가 있습니다. ADHD와 우울증은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경로를 함께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 의욕과 집중력을 조절하는 뇌의 ‘배선’이 상당 부분 겹치는 셈입니다.

거기에 두 질환이 함께 나타나는 비율까지 높다. 성인 ADHD 환자의 80%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다른 정신건강 문제를 하나 이상 동시에 갖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미국 국립공존질환조사에서는 ADHD가 있는 성인의 주요우울장애 유병률이 18.6%로, ADHD가 없는 사람(7.8%)보다 두 배 이상 높았습니다. 진짜 ADHD에 우울증이 ‘얹혀’ 있을 수도 있고, 우울증인데 ADHD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으니, 어느 한쪽으로 바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것입니다.

우울증 약이 듣지 않았던 이유

그렇다면 이런 오진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캐나다 토론토의 START 클리닉 연구팀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의뢰된 160명을 체계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 중 항우울제를 두 종류 이상 바꿔도 호전되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 97명을 따로 분석한 결과, 34%에서 이전에 한 번도 진단받지 못한 ADHD가 발견되었습니다. 게다가 SSRI 계열 항우울제에 반응하지 않았던 이력이 미진단 ADHD를 예측하는 인자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SSRI는 세로토닌에 작용하는 약인데, ADHD에서는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신호 조절의 이상이 핵심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다르니 약이 맞지 않았던 것이고, “약을 바꿔도 안 낫는다”는 좌절은 사실 진단 자체가 빗나간 신호였던 셈입니다.

놓친 ADHD가 우울증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영국 에이본 종단 연구에서 8,310명을 추적 관찰한 결과, 아동기에 ADHD가 있었던 사람은 성인기에 반복적인 우울 삽화를 겪을 위험이 1.35배 높았습니다. 즉, ADHD를 제때 발견하여 치료하지 못하면 나중에 우울증이 겹칠 위험이 커질 수 있고, 뒤따라온 우울증만 치료하면서 ADHD는 계속 놓치게 될 수 있습니다.

반대 방향의 착각도 존재한다

반대 방향도 있습니다. ‘나 ADHD인 것 같아’라는 자가 판단이 실은 우울증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나고야대학 연구팀이 ADHD 병력이 없는 우울증 환자 726명을 등록하여 ADHD 자가보고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34%가 ADHD 양성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그런데 12주간 우울증 치료를 받은 뒤 다시 검사하자, 결과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우울 증상이 60% 이상 호전된 그룹에서는 ADHD 양성률이 47%에서 14%로 급감한 것입니다. 우울증이 나아지자 ‘집중력 저하’와 ‘의욕 부족’도 함께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현상이 우울증에만 국한된 것도 아닙니다. 캐나다의 한 불안장애 전문 클리닉에서 618명의 불안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ADHD 자가보고 척도의 구조를 분석했더니, 41.3%가 ADHD 진단 기준 A를 충족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긴장을 풀기 어렵다”처럼 ADHD 과잉행동 항목 중 일부가 사실 ADHD보다 불안 요인에 더 강하게 연결되었다는 점입니다. 불안하면 가만히 못 앉아 있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는데, 이것이 자가보고 검사에서 ADHD처럼 잡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우울증이나 불안이 심한 상태에서는 누구나 ADHD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자가보고 검사만 믿으면, 실제로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인 사람이 ADHD라는 잘못된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두 질환을 자기 힘으로 구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감별 진단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기준을 알아두면, 진료실에서 더 정확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가. ADHD는 대체로 아동기(12세 이전)부터 집중력 문제, 충동성, 과잉 활동이 있었던 질환입니다. 초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유독 산만했거나,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거나, 과제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면 감별의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반면, 이런 문제가 성인이 된 이후 특정 시점부터 시작되었다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기분이 ‘고정’되어 있는가. 우울증에서는 의욕 저하와 우울한 기분이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지속됩니다. ADHD만 있는 경우에는 좌절이나 짜증이 있을 수 있지만, 하루 종일 가라앉은 기분이 고정되어 있거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동반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치료 반응도 감별의 단서다. 캐나다 ADHD 자원 연합(CADDRA) 가이드라인은 ADHD와 우울증이 함께 있을 때, 현재 기능 손상이 더 큰 질환부터 치료하고, 치료 반응을 본 뒤 나머지를 재평가하도록 권고합니다. 항우울제로 우울증이 나았는데도 집중력 문제가 남아 있다면 ADHD를 의심할 근거가 되고, 반대로 ADHD 약을 써도 기분 저하가 풀리지 않으면 우울증을 다시 살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ADHD인지 우울증인지’를 혼자 판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질환이 서로를 이렇게까지 닮은 이상, 자가 판단은 오진의 지름길입니다. 가장 확실한 한 가지는, 양쪽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상태에서 전문가의 체계적인 감별 진단을 받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ADHD와 우울증을 함께 감별해 달라”고 직접 요청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이 글은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집중력 저하, 의욕 부족 등의 증상이 지속되거나, ADHD 또는 우울증 진단·치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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