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금치를 먹을 때 혀가 까끌까끌한 느낌,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그 불쾌한 촉감의 정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바늘입니다. 옥살산칼슘이라는 물질이 결정으로 굳으면서 뾰족한 바늘 모양을 만들어낸 것인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바늘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려고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시금치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초식동물에 대항해 발전시킨 무기입니다.
식물 세계에 퍼진 보이지 않는 바늘
옥살산칼슘 결정은 식물 세계에서 가장 흔한 광물입니다. 200개 이상의 식물 과(科)에서 이 결정이 발견되며, 어떤 식물에서는 조직 건조 중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대량으로 쌓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광범위하게, 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존재한다는 건 이 물질이 식물 생존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뜻입니다.
그 역할은 하나가 아닙니다. 체내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저장고 구실을 하기도 하고, 세포 안팎의 이온 균형을 맞추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 바로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 무기입니다.
바늘로 찌르고, 영양을 빼앗는다
이 방어 무기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건, 미국 아칸소대학교 코스(Korth) 연구팀의 실험입니다. 연구팀은 옥살산칼슘 결정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식물과, 돌연변이로 결정을 거의 만들지 못하는 식물을 나란히 놓고 곤충의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유충은 결정이 없는 돌연변이 식물 잎을 압도적으로 선호했습니다. 야생형(정상) 식물의 잎을 먹고 자란 유충은 성장이 크게 떨어졌고, 결정이 없는 잎을 먹은 유충에 비해 번데기 무게가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후기 유충 단계에서는 사망률도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두 가지 경로입니다. 첫째, 결정이 곤충의 턱을 물리적으로 갈아버립니다.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결정이 풍부한 잎을 먹은 유충의 턱은 톱니가 닳아 매끈해진 반면, 결정 없는 잎을 먹은 유충의 턱은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선사시대 인간의 치아에서도 옥살산칼슘이 풍부한 식물을 많이 먹은 집단에서 비슷한 마모 흔적이 보고된 바 있습니다. 둘째, 결정은 곤충의 소화·흡수를 방해합니다. 같은 양의 잎을 먹어도 몸으로 전환되는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측정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연방대학교의 파이바(Paiva) 교수는 2021년 논문에서, 옥살산칼슘 결정의 방어 효과가 모든 식물과 모든 초식동물에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결정의 방어력은 특정 조건에서만 효과적이며, 일부 곤충은 장 안쪽을 보호하는 막 구조로 이 물리적 공격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늘 + 독: 식물의 이중 공격
그렇다면 바늘만으로는 약한 걸까요? 일본 국립농업생물자원연구소의 곤노(Konno)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습니다. 키위 열매에서 바늘형 결정(라피드)을 정제한 뒤, 파인애플 줄기에서 추출한 단백질 분해효소(브로멜라인)와 함께, 또는 따로 유충에게 먹여봤습니다.
바늘만 먹인 경우 유충은 성장이 약간 둔해졌을 뿐 한 마리도 죽지 않았습니다. 효소만 먹인 경우에도 사망률은 8~25%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늘과 효소를 동시에 먹이자, 유충 사망률이 86%까지 치솟았습니다. 반면 같은 실험을 바늘이 아닌 덩어리 형태의 옥살산칼슘으로 바꾸면, 효소를 함께 줘도 사망률은 19%에 머물렀습니다.
바늘의 ‘모양’이 핵심이었던 겁니다. 바늘이 곤충의 장벽에 미세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독성 물질이 체내로 침투하는 구조 — 연구팀은 이것을 ‘니들 이펙트(needle effec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다만 이 실험 결과는 아직 독립적으로 재현된 바 없어, 추가 검증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식물의 방어가 단순한 물리 공격이 아니라, 바늘과 독의 정교한 이중 공격 시스템일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인간의 반격: 물에 삶다
그런데 인간은 이 방어를 어떻게 뚫어왔을까요? 답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물에 삶는 것입니다.
채소의 옥살산이 조리 방법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삶기는 수용성 옥살산을 30~87%까지 제거합니다. 찌기는 5~53% 수준으로 효과가 낮았습니다. 감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오븐에 구워도 옥살산이 줄지 않았는데, 물에 잘 녹는 옥살산이 빠져나갈 수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늘 결정 자체도 조리로 무력화됩니다. 중국 윈난대학교 연구팀이 바늘형 결정이 풍부한 타로꽃을 100℃에서 장시간 쪄본 결과, 2시간 뒤 결정의 수는 약 70%, 길이는 약 80% 줄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전체 옥살산 함량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결정이 분해된 것이 아니라, 높은 온도에서 미세하게 녹았다가 식으면서 날카롭지 않은 작은 입자로 재결정된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합니다.
윈난성 주민들은 과학적 분석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타로꽃을 몇 시간씩 쪄서 먹어왔습니다. 시금치를 데치는 것, 토란을 오래 삶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류가 식물의 화학 무기에 대항해 발전시킨, 가장 오래되고 가장 효과적인 문화적 기술입니다.
장내세균이라는 세 번째 동맹군
인간에게는 조리 말고도 하나의 방어선이 더 있습니다. 장 속에 사는 세균입니다.
1980년 양의 반추위에서 처음 분리된 *옥살로박터 포르미게네스(Oxalobacter formigenes)*는 옥살산만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쓰는 특이한 혐기성 세균입니다. 이 세균이 장에서 옥살산을 분해해주면 신장으로 가는 옥살산이 줄어들기 때문에, 칼슘옥살산 결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다만 인간에서의 보호 효과는 아직 명확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세균과 식단의 관계를 보면 흥미로운 고리가 보입니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식단 속 옥살산이 15배 늘어나자 대변 속 이 세균의 수가 12배 증가한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식물을 많이 먹으면 옥살산 섭취가 늘고, 옥살산이 많아지면 이 세균이 번성하는 구조입니다. 물론 이 두 단계가 하나의 자동 인과 사슬이라고 확정하긴 이르지만, 각각의 연결고리는 독립적인 연구로 뒷받침됩니다.
실제로 뉴욕대학교 블레이저(Blaser) 연구팀이 탄자니아의 하자(Hadza) 부족, 베네수엘라의 아메리카 원주민, 뉴욕시의 산모·영아 코호트 등 세 집단을 비교한 결과, 전통적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집단에서는 이 세균의 보유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미국 내 대규모 코호트 연구들에서도 건강한 성인의 보유율은 약 31~38% 수준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서구화된 식생활과 항생제 노출 등 복합적 요인이 이 세균의 보유율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이 오래된 동맹군이 현대인의 장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에 시금치를 데칠 때, 끓는 물에 녹아 나가는 것이 오랜 세월 곤충의 턱을 갈아온 식물의 무기라는 사실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무심코 하는 ‘데치기’ 한 번이, 식물과 동물 사이 오래된 전쟁에서 인간이 찾아낸 가장 조용한 반격입니다.
이 글은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신장결석이 반복되거나 옥살산 관련 식단 조절을 고려하고 계신다면,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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