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건강이라고 하면 대부분 유산균을 떠올립니다. “프로바이오틱스 먹고 계세요?” 이 질문이 거의 인사처럼 쓰일 정도니까요. 그런데 2026년 2월,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39개국 1만 1,000명 이상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한 결과, 건강한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세균군을 발견한 겁니다. 이름은 CAG-170. 아직 실험실에서 배양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말 그대로 ‘미지의 세균’입니다.
CAG-170, 대체 뭘까
우리 장 속에는 약 4,600종의 세균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은 과학자들이 존재 자체를 몰랐던 종들입니다. 케임브리지대의 알렉산드르 알메이다(Alexandre Almeida) 박사팀은 ‘메타게노믹스’라는 기법으로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통째로 분석해 이 숨겨진 세균들의 목록을 만들었고, 그 목록 속에서 유독 건강과 강하게 연결된 하나의 그룹을 찾아냈습니다. 그게 바로 CAG-170입니다.
이 연구는 학술지 《Cell Host & Microbe》에 발표되었으며, 유럽·북미·아시아를 중심으로 39개국에서 수집된 1만 1,115개의 장내 미생물 샘플을 분석한 대규모 메타분석입니다.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과 크론병, 대장암, 비만, 파킨슨병, 만성피로증후군 등 13개 질환을 가진 사람의 장내 세균 구성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울 만큼 일관적이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장에는 CAG-170이 높은 수치로 존재했고,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낮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이 세균이 하는 일: 장내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CAG-170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두 가지 눈에 띄는 능력이 확인됐습니다. 하나는 비타민 B12를 대량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다양한 탄수화물과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효소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CAG-170이 만든 비타민 B12는 자기 자신이 쓰는 게 아닙니다. 연구팀은 이 B12가 장 속 다른 유익균들에게 공급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CAG-170은 직접 무대에 서지 않지만 뒤에서 다른 배우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스태프 같은 존재입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뒤를 받쳐주는 셈이죠.
알메이다 박사도 “CAG-170은 음식의 주요 성분을 소화하도록 돕고, 장내 미생물 생태계 전체가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세 가지 독립적 증거가 같은 결론을 가리킨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의 분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가지 접근법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39개국 건강한 사람과 13개 질환 환자의 장내 세균 구성을 비교했을 때, CAG-170은 ‘숨겨진 미생물’ 중 건강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그룹이었습니다. 이 패턴은 국가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두 번째, 6,000명 이상의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분석해 ‘어떤 세균이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가’를 계산했을 때도, CAG-170이 1위였습니다.
세 번째, 장내 미생물 균형이 무너진 상태인 ‘디스바이오시스(dysbiosis)’ 환자를 분석했더니, CAG-170 수치가 낮을수록 장내 불균형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디스바이오시스는 과민성 장증후군, 류머티즘 관절염, 불안·우울증 등 다양한 만성질환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사 먹을 수 없는 이유
여기까지 읽으면 “그럼 CAG-170 프로바이오틱스는 어디서 사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CAG-170은 현재 300종 이상이 확인됐지만, 실험실에서 배양에 성공한 것은 단 1종뿐입니다. 이 세균은 산소에 극도로 민감하고, 필수 아미노산인 아르기닌을 스스로 합성하지 못해서 특수한 조건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알메이다 박사는 “배양 배지에 아르기닌을 추가하면 성장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단서를 제시했지만, 이를 캡슐에 담아 장까지 살려서 보내는 기술은 아직 먼 이야기입니다.
알메이다 박사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 업계는 장내 미생물 연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수십 년 전과 같은 균주를 먹고 있죠. CAG-170처럼 건강과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진 새로운 세균군을 발견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프로바이오틱스는 훨씬 더 큰 건강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CAG-170을 직접 섭취하는 건 아직 불가능하지만, 이 연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장 건강은 특정 유산균 하나가 아니라, 장내 미생물 생태계 전체의 다양성과 균형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은 다양한 식이섬유와 발효식품이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높이고 만성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역시 장내 미생물 균형에는 식단과 생활습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핵심은 단순합니다. 다양한 채소와 통곡물, 발효식품으로 식이섬유 종류를 넓히고,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것. CAG-170 같은 ‘숨은 조력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유산균 캡슐 하나에 기대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더 효과적인 장 건강 전략일 수 있습니다.
출처 (5개)
- da Silva, A.C. et al. “Meta-analysis of the uncultured gut microbiome across 11,115 global metagenomes reveals a candidate signature of health.” Cell Host & Microbe, February 2026. DOI: 10.1016/j.chom.2026.01.013
- University of Cambridge. “‘Hidden’ bugs in our gut appear key to good health, finds global study.” Cambridge Research News, February 2026. https://www.cam.ac.uk/research/news/hidden-bugs-in-our-gut-appear-key-to-good-health-finds-global-study
- Nutrition Insight. “Cambridge researchers identify ‘hidden’ gut microbes to unlock next-gen probiotics.” February 2026. https://www.nutritioninsight.com/news/cambridge-hidden-microbes-probiotics-gut-b12.html
-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 “Fiber and fermented foods may aid microbiome, overall health.” May 2024. https://hsph.harvard.edu/news/fiber-fermented-food-microbiome/
- Cleveland Clinic. “Dysbiosis: What It Is, Symptoms, Causes, Treatment & Diet.” Last updated April 2024.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diseases/dysbio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