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나무즙, 벌나무환, 벌나무차. 간 건강을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간경화에도 효과가 있다”, “식약처가 인정했다”는 말까지 붙어 있으니 믿음이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따져본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연구 결과만 보면 기대가 되는 이유
벌나무(학명 Acer tegmentosum)의 간 보호 효과를 확인한 연구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대부분 국내 대학 연구팀이 수행한 동물실험입니다.
충남대 약대 연구팀은 사염화탄소와 알코올로 간 손상을 유도한 쥐에게 벌나무 추출물을 투여한 뒤, 간 수치(GOT·GPT)가 개선되고 항산화 활성이 높아지는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은 벌나무 추출물이 세포의 자가 청소 기능(자가포식)을 활성화해 간을 보호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경상대 수의학과 연구팀은 고지방 먹이를 5주간 먹인 쥐에게 벌나무 추출물을 함께 투여했더니, 간 조직의 총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유의하게 줄었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간세포의 지방 축적도 뚜렷하게 감소했습니다.
전북대·농촌진흥청 공동 연구팀은 담관을 묶어 담즙정체를 유도한 쥐 모델에서, 벌나무 추출물이 간 염증과 섬유화를 줄이는 효과를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동물실험 수준에서 벌나무의 간 보호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는 꾸준히 쌓이고 있습니다. 항산화, 항염증, 지방 축적 억제 등 여러 경로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사람에서의 확인은 아직입니다
문제는, 위의 연구들이 모두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는 점입니다. 쥐에서 효과가 확인됐다고 해서 사람에게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체중 대비 투여 용량이 다르고, 약물이 분해·흡수되는 경로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보인 물질이 사람 임상시험에서 같은 결과를 보이는 비율은 높지 않다는 것이 신약 개발 분야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현재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벌나무가 간 건강에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한 대규모 임상시험은 발표된 적이 없습니다. 서울대병원 연구센터가 쥐와 비글에게 벌나무 추출물을 90일간 반복 투여한 안전성 평가를 수행해, 독성이나 유전독성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보고한 연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연구가 확인한 것은 “먹어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지, “먹으면 간에 효과가 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 웹진에서 장은경 교수(경희대 한방내과)도 비슷한 맥락의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벌나무즙이 간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추출 방법이나 사용 부위에 따라 효능이나 부작용이 각양각색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식약처 인정”이라는 문구, 한번 들여다보면
벌나무 제품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문구가 “식약처 인정”입니다. 이 말의 실제 의미를 알아두면 판단이 한결 쉬워집니다.
벌나무는 2014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식품원료로 등재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안전성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가공식품에 넣을 수 없었는데, 안전성 평가를 거쳐 “식품 재료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것입니다. 즉, 이것은 “먹어도 안전하다”는 인정이지, “먹으면 간에 효과가 있다”는 인정이 아닙니다.
비교해 보면 차이가 선명합니다. 밀크시슬(밀크씨슬)은 식약처가 “간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기능성을 인정한 건강기능식품 고시형 원료입니다. 헛개나무 과병 추출물도 같은 기능성을 인정받은 개별인정형 원료입니다. 벌나무는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식약처 인정”이라는 같은 네 글자 뒤에 전혀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셈입니다.
가능성과 근거 사이
벌나무의 가능성을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동물실험에서 반복적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고, 독성도 낮은 편입니다. 다만 “간에 좋다”고 확신하기엔, 사람에서의 확인이라는 한 단계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벌나무즙이나 환을 고르기 전에, 지금 내가 기대하는 것이 연구가 실제로 보여준 것과 같은 수준인지 한번 점검해 보는 것 — 그것이 현명한 선택의 출발점입니다.
이 글은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특정 증상이 있거나 간 수치가 걱정되는 상황이라면, 벌나무 제품보다 의사의 진단이 먼저입니다.
출처 (5개)
- Park SH et al. Hepatoprotective effects of an Acer tegmentosum Maxim extract through antioxidant activity and the regulation of autophagy. Journal of Ethnopharmacology. 2019;239:111912. doi:10.1016/j.jep.2019.111912
- 장선희 외. 벌나무(Acer tegmentosum Maxim) 추출물의 항산화 활성 및 고지방식이를 급이한 흰쥐의 지방간 개선 효과. 한국가축위생학회지. 2019;42(2):43-51. doi:10.7853/kjvs.2019.42.2.43
- Bae UJ et al. Therapeutic Effect of Acer tegmentosum Maxim Twig Extract in Bile Duct Ligation-Induced Acute Cholestasis in Mice. Journal of Medicinal Food. 2022;25(6):652-659. doi:10.1089/jmf.2022.K.0015
- Park J et al. Safety Assessment of Acer tegmentosum Maxim. Water Extract: General Toxicity Studies in Sprague–Dawley Rats and Beagle Dogs With Re-evaluation of Genotoxic Potentials.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1;12:643516. doi:10.3389/fphar.2021.643516
-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 기능별 정보 – 간 건강. 식품안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