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건강 챙기려고 ABC주스를 한 잔 마셨는데, 출근길이나 오전 업무 중에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진 경험 없으신가요? 몸에 좋은 걸 마셨으니 활력이 넘쳐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그 졸음은 우연이 아닙니다. 원인은 주스 속 당분이 우리 몸에서 일으키는 특정 반응에 있습니다.
한 잔에 들어 있는 당분, 생각보다 많다
ABC주스는 사과, 비트, 당근 세 가지를 함께 갈거나 착즙해서 만듭니다. 건강한 재료들이니 당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실제 수치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시판 ABC주스 200ml 한 팩 기준으로 당류는 대략 11~20g 정도입니다. 직접 만들 경우 사과 1개, 비트 1/3개, 당근 1개를 넣으면 당류는 이보다 더 올라갑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당분의 ‘양’이 아니라 ‘속도’입니다. 사과를 통째로 씹어 먹으면 과육 속 섬유질이 당분의 흡수를 늦춰줍니다. 그런데 착즙기나 믹서로 갈면 이 섬유질이 대부분 파괴되거나 걸러집니다. 1977년에 발표된 고전적인 연구에서, 같은 양의 사과를 통째로 먹었을 때와 주스로 마셨을 때 혈중 인슐린 반응을 비교한 결과가 있습니다. 주스 형태로 마셨을 때 인슐린이 훨씬 높게 치솟았고, 이후 혈당은 공복 수준 아래로 더 깊이 떨어졌습니다. 섬유질이라는 ‘속도 조절 장치’가 사라진 결과입니다.
혈당이 올랐다 떨어질 때, 졸음이 찾아온다
공복 상태에서 섬유질 없는 당분이 들어오면, 혈당이 빠르게 치솟습니다. 우리 몸은 이 급등에 놀라서 인슐린을 과하게 내보냅니다. 그 결과 혈당이 원래 수준보다 더 아래로 곤두박질치는데, 이걸 ‘반응성 혈당 저하’라고 부릅니다.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이 1,070명에게 연속혈당측정기를 붙이고 총 8,600여 끼의 식사를 추적한 대규모 연구가 있습니다. 식후 2~3시간 사이에 혈당이 기준선 아래로 크게 떨어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배고픔이 9% 높아졌고 이후 24시간 동안 약 300kcal를 더 섭취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혈당 딥’이 식후 혈당이 얼마나 높이 올랐느냐보다 그 이후의 배고픔과 피로감을 더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점입니다.
졸음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됩니다. 혈당이 빠르게 오르면 인슐린이 아미노산을 근육으로 밀어 넣는데, 이때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은 상대적으로 뇌에 더 많이 도달하게 됩니다. 트립토판은 뇌에서 세로토닌으로 바뀌고, 세로토닌은 다시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재료가 됩니다. 시드니대 연구팀이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혈당지수(GI)가 높은 식사를 한 그룹은 낮은 GI 식사를 한 그룹보다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ABC주스를 공복에 마신 뒤 찾아오는 졸음은, 바로 이 경로가 빠르게 작동한 결과입니다.
같은 주스, 졸리지 않게 마시는 법
ABC주스가 나쁜 음료라는 뜻은 아닙니다. 비트의 질산염, 당근의 베타카로틴, 사과의 폴리페놀은 분명 몸에 이로운 성분들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마시느냐에 있습니다.
첫째, 공복에 주스만 단독으로 마시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삶은 달걀이나 견과류처럼 단백질이나 지방이 포함된 음식을 함께 먹으면, 위에서 음식물이 내려가는 속도가 느려져 혈당 급등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착즙보다 블렌딩을 권합니다. 믹서로 통째 갈면 섬유질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당분 흡수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습니다. 셋째, 한 번에 200ml 이상 마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양이 늘수록 한꺼번에 들어오는 당분 총량이 커져 혈당 진폭도 그만큼 커집니다.
ABC주스를 끊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과 함께, 어떤 형태로 마시느냐’가 오전의 졸음과 활력을 가르는 갈림길이라는 점은 기억해두면 좋겠습니다.
다만 주스를 마신 뒤 졸음과 함께 극심한 피로나 어지러움이 반복된다면, 내분비내과 전문의에게 혈당 반응을 한번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4개)
- Haber GB et al. Depletion and disruption of dietary fibre. Effects on satiety, plasma-glucose, and serum-insulin. The Lancet. 1977;2(8040):679-682. doi:10.1016/S0140-6736(77)90494-9
- Wyatt P et al. Postprandial glycaemic dips predict appetite and energy intake in healthy individuals. Nature Metabolism. 2021;3(4):523-529. doi:10.1038/s42255-021-00383-x
- Afaghi A, O’Connor H, Chow CM. High-glycemic-index carbohydrate meals shorten sleep onset.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2007;85(2):426-430. doi:10.1093/ajcn/85.2.426
- St-Onge MP et al. Carbohydrate and sleep: An evaluation of putative mechanisms. Frontiers in Nutrition. 2022;9:933898. doi:10.3389/fnut.2022.933898